예그린 펜션

“지, 지금은 내 비록 이런 모습이지만, 난 인형이 아니다!”

아무리 봐도 인형인데, 인형이 아니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게 기분이 나빴던 걸까, 인형은 날 보며 손가락질했다.

“그런데 너는 왜 나를 보고 놀라지 않는 게냐!”

“뭐…….”

하도 별별 일들을 다 봐서요. 차라리 귀신이었으면 소리라도 질렀을 텐데, 인형이 나오자 굳었던 몸이 빠르게 풀려지는 게 느껴졌다.

“뭐지, 그 시선은. 나를 깔보는 그 시선은 뭐냐!”

“귀여운 인형을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눈빛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이상한 존재일까 봐 겁났었는데, 너무 별거 아닌 존재라 내 시선이 지나치도록 솔직해졌나 보다.

“허…….”

“그래서 그쪽 누구신데요.”

“나는! 이곳의 주인이다!”

“아 네네.”

아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대답이었다.

“나를 비웃는 것이냐. 내가 이곳을 만들었단 말이다!”

“만든 사람이 주인이면 황궁도 처음 건축한 사람이 주인이게요?”

그 말에 인형은 쥐똥만큼 나 있는 자신의 수염을 손으로 쓸었다. 작은 인형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게 참 귀엽다.

“……떼잉…… 내 너를 조금 예쁘게 봐서 나타났건만…….”

“저를 예쁘게 보셨어요?”

“그럼! 네 덕분에 오랜만에 도서관이 싹 정리되지 않았더냐. 거기에 정기적으로 방문도 해 주고. 도서관은 아무도 찾아 주지 않으면 쓰레기장만 못한 건데, 네 덕분에 여기가 쓸모가 생겼지.”

어디서 꺼낸 건지, 갑자기 손톱만 한 작은 손수건을 든 인형은 그걸로 눈을 훔치고선 코를 팽 풀었다.

“그뿐이더냐. 가끔 칭찬도 해 주고, 물론 칭찬보다는 욕을 더 많이 하긴 했지만. 책 진짜 보기 힘들게 해 놨다든가, 관리 더럽게 안 했다든가. 그럴 때마다 쿡쿡 찔리긴 하지만……. 특히 마탑X들이 돈에 미쳐서 어쩌고 할 때는 내가…….”

“아 그건 욕이 아니라…… 그러니까…….”

사실이죠. 차마 그런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이 인형은 도서관에 꽤나 애정을 가지고 있는 듯했으니까.

“그래도 난 네가 참 예쁘다. 이곳을 쓸모 있게 만들어 주었으니. 나는 네가 올 때만을 매일 기다리고 있어.”

“예쁘게 봐 주시는 건 감사해요. 그런데 예쁨받으면…… 여기 올 때마다 욕도 못 하는 거 아니에요?”

그 말에 인형은 기다렸다는 듯 손으로 위쪽을 가리켰다.

“예쁨받으면 이 도서관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지!”

“지금도 제대로 이용하고 있는데요?”

“황제가 다 가짜라고 했던 저 위에 꽂힌 것들은 마법이 깃든 책들이다. 어디서도 알 수 없는 귀한 정보들이 있는 데다가, 아 그래 팔아도 아주 고가일 것이……”

“인형님!”

나도 모르게 인형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팔 수 있다니. 아니 굳이 팔지 않아도, 귀한 정보가 있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정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아주 세속적인 아이로구나.”

“세속적이라니요! 황실 도서관의 주인님.”

“허허 도서관의 주인이라니. 그렇지, 이제야 말이 통하는 거구나.”

“원래도 말은 잘 통하고 있었는걸요?”

내가 생각해도 너무 홀라당 넘어간 기분이다. 하지만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생각해 보니 도서관 주인하고 잘 지내면 편할 것 같다. 그래서 최대한 무해한 표정을 인형을 바라봤다.

“그래서 말인데요. 계속 황실 도서관의 주인님이라고 말하는 건 너무 기니까, 그냥 황도주라고 하는 게 어떨까요?”

“화, 황도주?”

되게 토속적이고 좋네. 도망칠 거 같고.

이건 절대 내가 주인님 주인님 하기 싫어서 권한 건 절대 절대 아니다. 아마도…….

“별로예요?”

“아니다. 내가 아주 오랫동안 여기 있어서 이름을 까먹었거든. 그래서 뭐 상관없단다. 오히려 네가 이름을 지어 주니 기분이 좋구나.”

“원래 마법사들은 이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나 봐요.”

그러고 보니 세헬루스도 헬리온이란 이름에서 세헬루스로 바꾼 거 보면.

“이름이라는 건 어딘가에 얽매이게 하는 힘이 있으니까. 마법사들은 자주 바꾸곤 하지. 마탑의 마법사가 되었을 때나, 자신의 스승이 정해져 앞으로의 노선을 바꾼다든가, 마탑에서 나온다든가. 그런 여러 가지 일이 있을 때 바꾼다.”

“오오…… 좀 똑똑해 보이네요.”

인형은 잘 보이지도 않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조차도 힘든 건지, 팔을 세차게 위로 올리며 으쓱거린 거였지만.

‘좀 귀엽네.’

“원래도 내가 똑똑하기는 했으나, 할 게 없어서 이곳에 있는 책들을 읽고 또 읽었더니 이렇게나 현명해졌단다.”

자신을 현명하다고 말한 인형은 꽤 기뻐 보였다.

“그러니 내게 잘하도록 하거라. 이 현명한 자의 조언을 받고 싶으면.”

아 네네. 잘난 척이 심한 걸 보니 황제를 생각나게 하는 인형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에 나와 친해지면 귀한 책들을 다 볼 수 있단다. 마탑 녀석들도 모를 귀한 책들이 저기 있다. 내가 아주 오랫동안 슬쩍슬쩍 모아 온 것들이지.”

“호오…… 그렇군요. 아! 그러면 현명하신 분이니까 모든 마법에 대해 아시나요? 그게 아니면 마법에 관한 책들이 있나요?”

“당연한 소리! 내가 만든 도서관인데 마법에 관한 책도 당연히 있지.”

“오호…….”

그는 당당하게 어딘가를 손으로 가리켰다. 워낙 바닥에 붙어 있는 인형이라 손으로 가리킨다 해도 명확한 위치를 찾긴 힘들었지만.

“마력이 아예 없는 사람이 마력을 갖게 해 주는 그런 것도 있지, 아무렴! 어때 대단하지?”

나는 손뼉을 치며 황도주의 말에 호응해 주었다.

황도주를 통해 최근 내가 궁금해했던 것을 생각보다 쉽게 알아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래서 뭐가 궁금한 것이냐. 뭐든 말해 보렴.”

“혹시…… 마법 중에서.”

“응?”

“누군가의 기억을 잃게 하는 마법도 있어요?”

그 말에 황도주의 얼굴이 활짝 폈다.

“있지!”

“오오 정말요? 그럼 그 이야기를 해 주세요. 그게 힘들면 책이 어디 있는지 알려 주신다면…….”

주변을 대충 살펴봤을 때 마법에 대한 책은 없긴 했었다.

“마법에 관한 책들은 다 저 위쪽에 있다. 1층은 일반 서적들이지. 원한다면 꺼내다 줄 수 있다. 그런데…….”

“그런데?”

안 된다는 건가. 호응이 부족했나? 더 칭찬을 해 줘야 도와주려나.

하지만 황도주의 입에서 나온 다음 말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너는 기억을 잃은 게 아닐 텐데?”

“네?”

“기억을 잃은 게 아니라 최면에 걸린 거야.”

이건 또 무슨 소리람. 나는 가만히 스타베팅 내려다보며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황도주는 단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제가요?”

“오호…… 몰랐나 보구나. 하긴, 모를 만하지. 몸과 영혼이 다르니까.”

황도주는 뽈뽈 걷더니, 갑자기 책장의 선반을 밟으며 폴짝폴짝 뛰어 올라왔다.

그 덕에 나와 눈높이가 맞게 되자 황도주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몸과 영혼이 다르다는 그 말 때문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심지어 날 보는 황도주의 시선에서 뭔가 내 속을 다 들킨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끄응 하며 나를 살피던 황도주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네 몸에는 강한 최면을 걸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래……요? 마법 같은 건가요?”

“그래. 너희 가문에 미약하게 내려오는 마법의 힘이 그렇게 발현된 거지.”

내가 마법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도저히 예상치 못한 소리에 그를 빤히 바라봤다.

“최면은 딱히 발동어가 필요치 않지. 마법진도 필요 없어. 그저 네가 반복적으로 하는 말들이 최면을 거는 발동어였을 게다. 그 때문에 네 주변에선 자연스럽게 최면에 걸린 이들이 있을 거고.”

그러고 보니 샤샤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던 거 같긴 하다. 내 말에는 힘이 있는 거 같다고, 내 말을 들으면 안심이 된다고.

나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그를 응시했다.

“그리고 그건 응당 다른 이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스스로에게도 걸 수 있지. 회피하기 위해, 상황을 잊어버리기 위해 자신에게 최면을 걸기도 하지. 네가 딱 그랬구나. 네 몸은 아주 오래전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 놨어.”

“그러면 아까 제가 기억을 잃은 게 아니라는 소리는…… 최면에 걸렸다는 소리예요?”

“그래. 잃은 게 아니라 가둬 둔 거지. 최면으로 떠올리지도 못하게.”

“아.”

“스스로 건 최면이 너무나 완벽해서 기억조차 하지 못했겠지. 하지만 몸과 영혼이 다른 사람이 되면서 그 최면이 서서히 풀리고 있어. 곧 기억하게 될 거야. 당장 오늘에라도. 결국 기억하게 될 것이다. 너의 최면은 다른 영혼에게 걸어 둔 것이니까.”

자신이 마법사라고 하는 황도주의 말이 사실인 듯, 그는 나를 제대로 봤다.

이 몸과 내 영혼이 다르다는 것을.

“모두들 다 그렇게…… 알아보나요?”

“최면에 관한 것? 아니면 몸과 영혼이 다르다는 것? 뭐 물을 필요가 없구나. 둘 다 보통의 경우라면 알아차리지 못하지. 이미 그런 사람을 경험한 자만이 경험을 통해 통찰할 수 있는 거지. 이곳에서는 오로지 나만 알 것이다. 내가 좀 대단해서 말이지.”

어깨를 들썩이는 황도주를 보는데도, 귀여운 그 모습을 보는데도 딱히 다른 반응이 나오질 않았다.

“어찌 되었든, 최면은 곧 풀릴 것이다. 자기가 최면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풀려 버리는 데다가, 최면은 몸과 영혼에 새겨진 듯한데, 영혼이 달라졌으니 더 가속도가 붙은 모양이구나.”

황도주 인형의 작은 손이 내 볼에 툭 하고 닿았다.

“아…… 그렇군요. 내가…… 잊고 있는 기억이 있다니.”

“하지만 넌 그것보다 다른 걸 걱정하는 모양이구나. 내게 들킨 것에 대해.”

“…….”

단번에 알아차렸다. 무슨 최면이 이 몸에 걸려 있는지는 내게 중요치 않았다. 이 몸의 원주인이 없어지고 내가 이 몸을 차지했다는 거. 그걸 다른 사람이 아는 게 더 중요했다.

“걱정 말거라. 나는 누구에게도 말할 생각이 없어. 네 덕분에 내가 살판났는데 뭐 하러 말하겠어. 거기에 다른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러니 걱정 마.”

오늘 처음 만났고 자신이 이 도서관의 주인이라고 말하지만 자신의 이름조차 잊어버린 채 오랜 세월 이곳에 있었던 인형의 모든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할 생각이 없다는 그 말도.

마음 같아서는 절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는 확언까지 받고 싶었으나, 그럴 순 없었다. 내가 그것에 대해 말하는 순간, 내 약점이 생기는 것 같았으니까.

때문에 난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막상 물어야 할 건 제대로 묻지도 못했다.

르델로가 기억 상실 마법에 걸린 건지, 그런 마법이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어떻게 하면 풀 수 있는 건지도.

그런 걸 물어야 했건만 내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는 말과 내 몸과 영혼이 다르다는 걸 단숨에 꿰뚫은 그 때문에 난 어색하게 웃었다.

“이제는 가야겠어요.”

“벌써 가려고? 아쉽구나, 재미있었는데. 오랜만에 말할 상대도 생기고.”

“그게 할 일이 떠올라서요. 동생을 너무 혼자 두고 온 거 같아요.”

사실은 아니었다. 진실을 들킨 통에, 도망치고 싶어진 것뿐. 그걸 알 리 없는 황도주는 손까지 휘적거리며 내게 인사를 했다.